독후감은 제때제때 밀리지 않고 써야지. 다짐해놓고 매일 미루는 멍청이...아가미도 한달 전에 읽어놓고 이제야 노트북 키고 앉았다...이제 데미안만 쓰면 독후감 다 쓴다...앞으로는 정말 안미루고 안밀리고 쓸 것을 다짐합니다. 어릴 때는 독후감 쓰기 싫어서 발버둥쳤는데 지금은 자발적으로 쓴다는게 신기하고 웃기다. 심지어 다이어리도 매일 쓰고 있음. 일기장 맨날 쥐어짜서 지어내고 그랬는데 말이에요!
"그건 완성되지 못한 이미지를 제 손으로 부순 자의, 끝까지 읽지 못한 책을 결국 덮어버리고 반납한 뒤 두번 다시는 대출하지 못하게 되버린 이의 표정에 가까웠어요. " 117p
이 표현이 강하에게 너무 잘 어울린다. 강하는 곤의 아가미를 긍정하며 다정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고, 결국 도망치듯이 모든게 끝나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되버렸다는 점에서...
강하는 곤을 보면서 "눈부신 것, 빛나는 것, 귀한 것, 좋은 것은 숨겨두고 혼자만 알아야 하는거야."하던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지만, 다른 애를 구하기 위해 호수로 뛰어드는 곤을 보고는 분노와 질투에 휩싸인다. 그 후론 곤을 빌어먹을 물고기 새끼라고 몰아세우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밖으로 나가서 그 아가미를 들키면 분명 횟감처럼 사람들에게 파헤쳐질거라고. 그렇게 두려움 속에 자신을 부정하며 살던 와중에 곤은 강하의 엄마를 만나고, 처음으로 "너 참 예쁘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인생 최초로 자신을 긍정하는 말에 구원을 느끼는 곤.
"강하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결코 자신의 손이 닿을 수 없는 호수의 바닥, 그 깊이였다. 자신이 가지 못하는 곳에 곤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거리감과, 언젠가는 곤이 정말로 한마리 물고기가 되어 다른 물고기떼들 사이로 깊이깊이 헤엄쳐 들어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97p
나는 어차피 네가 될 수 없으니 너를 궁지에 몰아넣음으로써만 너에게 가까워 질 수 있다는, 이 묘사가 강하를 잘 설명하는 것 같다. 읽으면서 문장들이 너무 좋아가지고 엄청 적어놨다...
"당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론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이라는 사실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괴리감을 견딜 수 없어 했어요." 119p
어머니의 시체 앞에서도 강하는 곤을 떠나보낸다. 그런 강하에게 곤은 날 죽이고 싶지 않냐고 묻고, 강하는 물론 죽이고 싶다고 대답한다.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살아줬으면 좋겠다니! 곤은 지금껏 자신이 들어본 말 중에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예쁘다'가 지금 이 말에 비하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폭포처럼 와락 깨달았다. 언제나 강하가 자신을 물고기 아닌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랐지만 지금의 말은 그것을 넘어선,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을 뜻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 185p
여기서 강하의 "물론 죽이고 싶지."가 단순히 엄마가 죽어서 그런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강하는 차라리 곤이 없는게 나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는 곤을 좋아하면서도 사라질까 두려워했고, 정말 물 속으로 사라질 수 있게 만드는 곤의 아가미를 질투했으니까. 이토록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상대라면 때때로 죽이고 싶었을거 같아.
강하는 해류에게 경찰조사가 잘 마무리됐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을까? 해류의 말처럼 강하가 시체를 호수에 가라앉혔을거 같다. 그래놓고 일부러 잘 끝났다고 설명한건 아니었을까? 강하가 곤을 싫어했던게 증오가 아니라 혼돈에 가까운 막연함이라 표현한게 좋았다. 반짝이고 아름다운 미지의 것에 대한 애정과 두려움.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보면서 알 수 없고 아름답고 역겹고 어쩌면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던게 떠올랐다. 나와 달라서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래서 싫기도 하다니 사람 마음은 참 이상하지.
"한 번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존재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한 음절이 혈관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마침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210p
뒤늦게 강하의 마음을 알고 고개숙여 우는 곤이 상상되어서 눈물났다...
곤의 아가미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인 강하가, 정작 자기가 지어준 이름을 부르지도 못했다는게 슬프다. 그가 정말 날아갈까봐 두려웠던 어린 강하는 어른이 될 때까지도 그를 불러보지 못했다는게 넘 슬퍼...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도 번호 안바꾸고 유지한 강하... 곤에 대해 아는 유일한 사람인 해류와 둘이서 곤을 교집합 삼아 서로를 위로한 것...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 보려고 했는데 이게 너무...사랑이 장난이 아니어서 눈가 촉촉해졌다...일단 엄마 죽음 앞에서 너 다쳤냐고 물어보고 돈챙겨서 보낸거부터가...어쩌면 곤을 다시 만날수도 있었는데 못만나게 된것도 눈물나고...
"아주 중요한 사람을 찾고 있대. 그런데 왜 밖에서 안 찾고 물에서 찾느냐고 물었더니, 사실은 중요한 사람의 시체를 찾고 있다는 거야." 216p
"인어 왕자님은 누구를 위해 다리를 얻은 걸까? 그러면 역시 언젠가는 물거품이 되어서 아침 햇살에 부셔져버릴까?"217p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모든 주인공이 불행했고 불행하다는 생각을 했다. 곤이 평생 붙잡을 기억이라고는 시골 집에서 할아버지와 강하와 함께 살던, 밖으로 잘 나가지도 못했던 날들 뿐이라는게 슬프다. 태어나서 버려지고 우연히 강하에게 구해지고 결국 혼자 남아, 이제는 그의 시체를 찾아 바다를 헤맬 곤을 생각하면 너무 가엾다. 늘 부정당하던 아가미로 자유롭게 떠나게 되어 다행인걸까 잘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이 더 행복할까 싶다가도 고개숙여 울던 곤이 생각난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에 빠져 가만히 있었다. 어딘가의 바다에 정말 곤이 있을 것 같다. 어디로 떠밀려갔을지 모를 강하를 찾아 이리저리 유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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