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흠집이 난 과일, 상품가치가 떨어져서 팔 수 없는 과일.
사놓고 까먹어서 냉장고에서 썩은 채 발견하게 된 복숭아를 보면서 조각이 울던 모습이 생각난다. 이제 예전같지 않은 몸과 뇌를 새삼 상기해서 서러웠을까? 잊혀져서 썩어가는 복숭아를 보면서 그게 자신 같다고 생각했을까?
노인은 낡은것이라는 그런 관념들. 노인을 오래된 옛 것 정도로 여기는 사회적 시선들. 조각 역시 스스로 그렇게 '늙음'에 대해 생각했었고.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 했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그 나이대에 맞는 것들. 그런것들이 있어서 오히려 나이에 대한 감각을 느끼는 것 같다. 자라면 자랄수록 한국 사회에선 나이에 맞게 정해진 단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초,중,고, 반드시 스무살에 좋은 대학을 가서 졸업하고 그럴싸한 직업을 가지고 결혼해야한다고. 여기서 벗어나는 순간 내가 너무 잘못될것같다는 불안감. 그래서 한 발짝이라도 틀어지는 순간 와르르 다 무너지는 그런 느낌. 대부분의 어른이 이렇게 생각해서 사회도 내게 그런걸 바라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마다 어쩔줄을 모르겠다. 그래도 여지껏 그래왔듯이 나는 그냥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할 수 있을때 열심히 해야지 뭐...백이십세 시대라 하고 그거 생각하면 아직 존나 애기다. 이렇게 자기합리화 하면서 늦은것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세뇌하고 있는 중이다.ㅋㅋㅋㅋ독후감 쓰다가 왜 이 얘기가 나오지ㅋㅋㅋㅋㅋ
아주 어릴 때, 나는 엄마가 처음부터 엄마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처음부터 할머니고. 나처럼 어린 시절 그런게 있을거라고 생각을 못했었다. 그러다 엄마가 나만했을 때 사진을 본 후에야 엄마가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었구나 깨달았던 기억이 난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그런 노화의 과정에서 가장 혼란스러운건 본인이구나 싶었다. 지금 난 고작 이런 나이에도 혼란스러운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몸은 더뎌지고 더 혼란스럽겠지. 내가 부모님이 나이들었구나 새삼 깨달을 때 마다 혼란스러운 것처럼.
위자드베이커리에서부터 느꼈지만...작가님 소설에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는 사랑이 있다 ㅋㅋㅋ대놓고 명확하게 지칭하진 않지만 이해하면 더 와닿는 묘사라 너무 좋다.
엄마는 나이때문에 당연히 사랑이 아닐거라 생각하던데 나는 조각을 향한 투우의 감정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그것이 언제나 순도100의 애정은 아니지만요...
엄마는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심리상담까지 공부해놓고는 <파과>도 <아가미>도 왜 인물들이 이런 행동을 했는지, 그 동력이 되는 감정이 무엇인지 모른다는게 신기하다. 엄마가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클럽씬을 보고도 그게 그런 의미인줄 몰랐던 것처럼, 젊은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면 어색해서 그런가봐.
엄마가 느끼는 의문들은 사랑을 집어넣으면 모두 풀리는데. 투우가 조각에게 약을 빻아준 이유를 내내 궁금해했던 것. 의식에서 유일하게 닻을 내리고 정박할 순간을 그녀와의 순간이라 생각한 것. 그녀의 머리칼을 손에 감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영원히 모를 감촉이 되어버렸다 생각하는 것. 강선생에게 관심보이는 조각을 보챈 것. <아가미>에서 강하가 호수에 뛰어드는 곤을 보고 질투와 분노에 휩싸엿던 것. 그럼에도 곤을 보내주기 위해 돈을 모으고, 어머니를 대신 묻은 것. 모든 행동에는 하나 이상의 감정이 있는데, 이걸 빈칸으로 두니 인과를 부자연스럽게 느끼는 건 당연하다.
마지막으로 조각의 무릎에 머리를 뉘이고, 그 많은 어린아이들중에 당신을 여기까지 찾아내서, 당신 옆에서 삶을 내려놓는건 내가 유일하다는것에 안도하고 눈을 감는 남자...이게 어떻게 사랑이 아니죠...평범한 삶의 기회가 있었음을 스스로도 알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방역업을 선택했고. 마지막은 조각의 곁에서 정한 부분이 너무 사랑이다...투우가 나를 정말 기억하냐고 묻는거랑, 이제 알약 삼킬줄아니 하고 묻는 조각의 모습이 그려져서 눈물이...눈물이...
마지막 장면에서 조각이 생각 했던것처럼, 서로 목을 긋는게 아니라 감싸안을수도 있었을 거라고. 투우랑 다른 방식으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들어서 슬펐다.
혜나가 어떻게 구출됬는지. 강선생은 어땠는지. 그렇게 후일담 없이 상상의 여지만 남겨서 흥미롭다. 사실 내면에서는 더 보여달라고 울부짖고 있고요...아무튼 오히려 사건 마지막이 어떻게 됐는지 안보여준게 깔끔하고 좋았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각 하나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에필로그에 왼손이 없다는걸 보면 조각은 대가를 지불하고 업계를 떠난듯하다. 다 읽고 나니 <파과>라는 제목이 쓸쓸하게 느껴졌는데 그래도 마지막에 조각이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모습을 보여줘서 좋았다. 처음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고민하던 조각이 마침내 네일아트를 받는 그 모습이요. 흠집이 난 과일이든 어떻든 조각이 사회의 시선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한테 <파과>를 추천한건데, 정작 엄마는 다 읽고도 제목이 왜 파과인지 물어봐서 약간 슬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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